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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를 즐기기 위한 작품 추천(문학, 영화, 게임)/고전 작품

오비디우스 - 변신이야기

(* 아래 글은 제가 직접 작성한 글이 아니며, 작품 해설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을 해석하여 가져와 정리한 것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Denis Feeney 해설문 중 발췌-

변신이야기

  • 오비디우스의 삶과 정치
  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 나소는 B.C. 43년 3월 20일, 로마의 동쪽에 있는 술모라는 산악 지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비디우스는 아마 우리가 정확히 날짜를 찍을 수 있는 최초의 로마인 세대 중 한 명일 것입니다. 바로 2년 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 공화국의 음력 달력을 없애고 (지금까지도 쓰고 있는) 그의 월력 달력으로 교체했기 때문이죠. 오비디우스는 어릴 때부터 작문에 재능이 있었고, (정치계를 원했던)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에 온 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가 서른 살 쯤이 되었을 때, 오비디우스는 왕국 전역에 Amores(사랑에 대한 시 장르)로 유명해졌죠.

  B.C. 2세기 경, 40대 대 초~중반 사이, 오비디우스는 엘레게이아 형식의 사랑의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유일하게 소실된 그의 작품 Medea를 쓴 후, 오비이두스는 그가 지금까지 썼던 그 어떠한 작품보다 그 양도, 형식도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작품을 동시에 시작하죠. Fasti('로마의 축제일')와 Metamorphoses('변신이야기')입니다. 특히 '변신이야기'는 (이미 굉장히 길었던) '로마의 축제일'보다 훨씬 길었고, 지금까지 오비디우스가 즐겨 사용했던 카툴루스나 프로페르티우스의 은율 형식과는 다른 베르길리우스의 메터(metre - 은율시의 형식 중 하나)와 호메로스의 dactylic hexameter(강약약조의 6보격)을 사용하였습니다. 

  오비디우스는 그가 살고 있던 시대 사회의 관습과 권력 구조의 모습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화국과 의회가 무너지고 이에 따른 혼란을 직접 겪었던 그의 앞 세대 시인들과는 다르게 오비디우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정치배경 속에 자라났습니다. (물론 그의 어린시절도 마크 안토니와 카이사르 옥타비안, 율리아스 카이사르 등으로 점칠된 사건사고가 많았지만요.) 그렇기에 그의 시 속에서는, 베르길리우스나 호라티우스, 프로테르티우스의 작품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극단적 불안과 그만큼 깊이 있는 안도 사이의 감정적 펜듈림은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비디우스의 작품 속에는 하나의 발전하는 구조로서의 원수정(우두머리에 의한 통치)에 대한 지적이고 장기적인 관찰뿐만 아니라, 로마의 전반적인 정치, 종교, 사회의 성장에 따른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사회 속 권력 구조에 관한 오비디우스의 관심은 '변신 이야기'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특히 마지막 book을 보죠. 마지막 Book의 주요 갈등은 '상속의 문제'로, 아우구스투스의 필연적인 사망 끝에 찾아 올 미래와 운명에 대한 오비디우스와 그의 동시대의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집착적인 관심을 반영하고 있죠. 

  • 변신이야기의 주제
  로마 왕국의 멸망 후 유럽세계에서 그리스-로마 신화는 오비디우스로부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장르조차 오비디우스에게 의존하고 있으니깐요. ) 호메로스의 트로이와 오디세우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베르셀리우스의 디도를 제외하고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오비디우스 신화에서 그 원본을 찾을 수 없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오비디우스의 신화는 광범위한 규모의 경험을 다루며 다양한 인간의 동기와 어리석음에 대한 심리학적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를 모두 연결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정체성에 대한 흥미입니다. '한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일까?'

  오비디우스는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키려 계속해서 노력합니다. 인간들이 자신의 본 모습으로부터 왜곡되어 버리는 이야기는 이 질문을 탐구하기 위한 불편한 수단일 뿐이죠. 특히 '변신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끔찍한 '강간'의 이야기는 종종 자신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모습이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강제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도록 하는 느낌을 받도록 하죠. 예를 들어 Book 2에서 한 아르카디아 님프가 제우스의 피해자가 됩니다. 오비디우스는 그녀의 이름(칼리스토)을 말해주지 않죠. 오비디우스의 관객은 - 이미 오래된 그 신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오비디우스가 피해자의 이름을 생략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Callisto(칼리스토)는 '가장 아름다운'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제우스를 홀리게 한 바로 그 아름다움은 헤라가 그녀의 분노를 님프에게 돌림으로써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자는 그녀의 익숙한 몸이 낯선 곰의 주둥아리와 털로 변하는 파괴를 가져옵니다. 

  또한 오비디우스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적절한 거리와 정체성에 대해 특히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 나르키소스와 에코를 살펴보죠. 원래 이 두 이야기는 서로 독립적인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오비디우스는 이 둘을 합침으로써 건강한 성(性)으로부터 변형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르키소스는 너무 자기 자신에게 몰두해 있고, 에코는 지나치게 타인에게 몰입하고 있죠. 

  사랑에 대한 오비디우스의 흥미는 이런 '왜곡된 모습'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결혼에 대한 그의 입장도 흥미롭죠. 호메로스의 작품 이후로 고대 문학에서 '결혼'에 대한 묘사는 신기하게도 잘 없습니다. 하지만 오비디우스는 우리에게 두칼리온과 파이라(Book 1), 바우키스와 필라몬(Book 8)을, 알시오네와 케이크스(Book 11)를 보여주죠. 특히 인상적인 이야기는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Book 17)입니다. 그들의 신화는 빅토리아 시대의 로맨스 소설에나 등장할 법 합니다. 서로에게 충실한 시작과, 간통으로의 빠짐과 용서, 그리고 지나치게 집착적인 질투에 인한 파괴적 결말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