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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를 즐기기 위한 작품 추천(문학, 영화, 게임)/고전 작품

호메로스 - 오디세이아

(* 아래 글은 제가 직접 작성한 글이 아니며, 작품 해설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을 해석하여 가져와 정리한 것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Peter Jones 해설문 중 발췌-

오뒤세우스 : 천개의 변장을 한 영웅

  오뒤세우스라는 영웅에 대해 대체로 세 종류의 반응이 있습니다.
- 첫번째, 그는 충성스러운 남편-영웅이며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다. 그에게 그 어떤 심판이, 고난과 유혹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은 그의 궁극적 목표에 삼켜지고 만다.
- 둘째, 그는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추구하는 영원한 방랑가이다. 오뒤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는 다시 떠나고 죽을 때까지 떠돈다.
- 셋째, 안티-히어로, 적대자, 까칠하고 이기적인 기회주의자로 가장 불명예스러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변장과 사기를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사람이다. (클래식 그리스 & 로마인들은 자주 오뒤세우스를 이런 모습으로 평가하곤 했습니다.)

  이 셋 평가 중, 두 번째(단테의 인페르노에 묘사된 오뒤세우스이다.) 는 호메로스의 오뒤세우스는 아님이 분명합니다. 호메로스에게 오뒤세우스란, 무력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계속해서 여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집니다. 그가 사이클롭스의 섬을 여행할 필요는 없었다는 점은 사실이나, 오뒤세우스가 그 섬을 방문한 것은 개인적 조사가 아닌 음식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이렌의 노래를 들은 것은 어차피 그 방향으로 가야했기 때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잘 지나갈 수 있는 방법을 키르케가 먼저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올로스가 바로 집으로 갈 수 있는 도움을 제안했을 때 오뒤세우스는 그의 지리학적 흥미를 위해 이 제안을 거부한 적도 없었죠. 

  나머지 두 개의 평가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오뒤세우스>
  오뒤세우스는 불멸을 제시한 칼립소를 거절하고, 연꽃 잎을 먹는 자들을 신경쓰지 않으며, 그의 선원들의 설득에도 만류하고 키르케, 그리고 편안한 부를 제공하는 파이아케스인들과도 헤어집니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로부터 이미 그는 집으로 가는 길이 재난으로 가득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뒤세우스는 돌아갑니다.

<안티히어로 오뒤세우스>  
  오뒤세우스의 안티히어로적 성격 또한 오디세이아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변장과 모욕, 심지어 '이름없음' 까지 감수합니다. 그는 유마이오스(오뒤세우스의 돼지치기꾼)를 양심없게도 착취(!)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자신의 배고픔에 대해 징징거립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모습은, 그가 전쟁터에 비해 아주 다른 역경을 마주하고 있는 영웅인 점을 떠올린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마 독자들이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이 아무리 나쁘게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오뒤세우스가 그들을 모두 죽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재산을 몰수함으로써 보상을 받아갔다는 점일 것입니다.  여기선 Xenia(크세니아 : 손님을 잡 접대hospitality하는 관습)의 중요성 밖에 고려해야 할 점이 네 가지 있다.
- 첫째, 고대 사회에서는 한 가정의 생존은 그 가정이 스스로를 먹여살릴 수 있는 능력에 의존했습니다. 한 가정의 자급자족, 경제적 능력을 위협하는 것들은 장기적으로, 그 가정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 둘째, 구혼자들은 그들의 행동이 결국 파멸로 이끌 것임을 이미 경고받았습니다. 구혼자들은 그리스 신화에서는 절대 하면 안되는 것! - 신으로부터 온 경고를 무시했던 것입니다. 
- 셋째, 구혼자들은 오뒤세우스의 가정을 파괴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오뒤세우스가 돌아온다면 그를 죽이려고, 그리고 텔레마코스를 죽이려고 했다.
- 넷째, 범죄와 형별에 관한 도시의 개입이 없는 상태라면, 행해진 잘못을 바로 잡을 권리는 그 가족에게 있었다.

우리가 지금 오뒤세우스의 행위의 잔혹성에 대해 논해봤자, 아마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행동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진 않았을 겁니다.